조영래 - 전태일 평전
80년대 서울 도심의 변두리 건물에도 많은 봉제공장들이 입주해 있었다. 건물 창문에 '시다(보조) 구함', '재봉사 구함', '재단사 구함' 등의 문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당시 봉제업이 국내산업에 있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학교 시절 나의 어머니는 미싱사였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어머님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늘 어린 막내 동생은 어머님의 출근길에 큰 장애물이었다. 울고불고 생떼를 부리는 막내를 안고 달래던 때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일 나가시는 어머님을 쫓아 울며 대문밖 골목까지 뛰쳐나가는 막내를 안고 나도 울었다. 어머님은 중고등학교 입학시즌에는 밀려드는 일때문에 밤늦게 귀가하시는 일이 많았으며 손가락에는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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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4.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