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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 전태일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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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logueman 2024. 1. 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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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서울 도심의 변두리 건물에도 많은 봉제공장들이 입주해 있었다. 건물 창문에 '시다(보조) 구함', '재봉사 구함', '재단사 구함' 등의 문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당시 봉제업이 국내산업에 있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학교 시절 나의 어머니는 미싱사였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어머님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늘 어린 막내 동생은 어머님의 출근길에 큰 장애물이었다. 울고불고 생떼를 부리는 막내를 안고 달래던 때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일 나가시는 어머님을 쫓아 울며 대문밖 골목까지 뛰쳐나가는 막내를 안고 나도 울었다.   

 

어머님은 중고등학교 입학시즌에는 밀려드는 일때문에 밤늦게 귀가하시는 일이 많았으며 손가락에는 항상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셨다. 재봉작업 중 졸다가 재봉바늘에 수도 없이 찔리신 것이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셔야 할 어머님은 일요일에도 밀린 집안일을 하시느라....... 그 시절 비단 내 어머님만의 일을 아니었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

 

그는 1948년생으로 대구에서 2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을 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누구보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그에게 지독한 가난은 중학교 중퇴라는 학력만을 허락했다.

 

과거에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영역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

- 전태일의 1969년 12월 31일 일기에서

 

서울 평화시장 등에서 일하며 어린여공들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고통받고, 사용자의 부당행위와 최소한의 법마저 지켜지지 않는 노동현실을 개선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군사독재정권의 무시와 탄압으로 관철되지 못했다.

 

결국 그는 1970년 11월 13일 "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 " 노동자들을 혹사시키지 마라 ", "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라고 외치며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함으로써 불의에 온몸을 던져 항거하였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적 현실입니까? 빈부(貧富)의 법칙입니까?

- 전태일의 1970년대 초 작품 초고에서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당시 대학가의 투쟁은 '민주화'와 '노동운동'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였으며 노동분야에 있어서 전태일은 항상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노동운동의 확산과 발전이 그의 분신이 기점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내가 대학에 가서야 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독재정권하의 제도권 교육의 한계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그의 삶과 죽음의 기록을 담은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은 그의 남아있는 일기와 어머님과 투쟁에 함께했던 동료들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으며, 총학생회에 몸담고 있던 같은 과 친구가 처음 내게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이기도 했다. 

 

책에서 인용되는 그의 일기와 낙서, 편지를 보면 당시 그가 받은 고통과 고뇌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해서든 개선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글이라기보다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그의 글에서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노동자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노동환경 개선,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공장굴뚝위에서, 타워크레인 위에서, 공장의 옥상에서 부르짖고 또 죽어간 노동자들을 생각할 때 부디 전태일 열사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그의 유언이 우리 산자들의 가슴에서 메아리가 되고 큰 울림이 되어 모두가 하나 되는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버림받은 목숨들, 불쌍한 근로자들을 위해 죽어가는 나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조금도 슬퍼 마세요.

두고두고 더 깊이 생각해 보시면 어머니도 이 불효자식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저를 원망하십니까?

- 전태일 열사가 눈을 감기전 어머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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