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영화와 음악이 있다. 최인호 원작 '겨울나그네'
중학교 시절부터 나는 가요는 물론 팝송 듣는 것을 좋아해서 1980년대 초 광화문 구세군 회관 뒤에 있었던 음악다방 '홈런다방' 을 드나들었다. 미성년자라서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누나(레지)에게 사정하여 들어가서는 어른들 눈에 띄지않게 구석에 앉아 음악을 훔쳐듣곤 했다. 내가 신청한 곡이 흘러나올 때의 희열이란...............
그때 신청했던 곡들은 대부분 Eagles, Poco, Lobo, ELO, Led Zeppelin 등이었는데 일제 산수이 스피커와 테크닉스 턴테이블, 그리고 마란츠 앰프의 조합에서 나오는 사운드는 집에서 듣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1988년도쯤 그날은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명동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극장에 걸린 영화 '겨울나그네'를 발견했다. 언젠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같이 보려고 했던 영화를 면도도 하지 않은 시꺼먼 놈하고 보는게 좀 거슬렸지만 곧 입대도 해야하고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민우(강석우분)가 캠퍼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다혜(이미숙분)와 부딛치는 장면에서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가 흘러나온다.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보리수 껍질에다 사랑의 말 새겨넣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그곳을 찾았네
나 오늘 이 깊은 밤에도 그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두 눈을 꼭 감아 버렸네
슈베르트는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가곡의 왕' 이라 칭하고 가곡집중 '겨울나그네' '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등이 있다는 정도 외에 특별한 지식이 없던 시절,
극장안의 스피커에서 웅장하게 흘러나오던 '보리수'를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영화를 계기로 나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생전 듣지 않던 93.1 클래식 FM방송을 듣기도 하고 클래식 음반을 구매하는 비율도 늘어났다.
영화는 새드앤딩이었다. 민우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을 하게 되는데 '피리부는 소년' 민우의 사랑은 그렇게 끝을 맺고 만다
한 카페에서 민우의 죽음을 전해 듣고 다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이때 흐르던 음악이 Eagles의 Sad cafe 였다.
광화문 홈런다방이나 미리내에서 신청해서 듣던 그 sad cafe~
오랜시간이 지난 후 이병헌이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배우 신민아가 연기했던 첼리스트를 보며 나는 '겨울나그네'의 다혜를 생각했었다.
Sad cafe 외에도 Rare Bird 의 Sympathy 라는 곡도 흘러나왔는데....어느 장면에서였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 만났던 나의 첫사랑의 얼굴이 선명히 기억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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