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토지"를 쓰신 故박경리 선생께서 말년에 쓰신 시 가운데 "일 잘하는 사내" 라는 작품이 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이 시을 담은 시집의 제목이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다.
참으로 솔직하고 담백한 그리고 무언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시라기 보다 흔히 만날 수 있는 노인의 넋두리를 듣는 듯.....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남기신 고인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암울한 독재시대를 온 몸으로 부대끼며 견뎌온 작가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바람끼에 상처를 받고 홀어머니와 살았으며, 결혼 후에는 전쟁통에 황해도 연안 여자중학교 교사였던 남편을 공산당에 부역했다는 누명으로, 어린 아들은 병으로 잃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젊은 눈망울들"은 작가의 자손들이었을까?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과 "순리에 대한 그리움" 이 담고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평범하고 소박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 등 혼자만의 해석을 담아본다.
작가가 말하는 "일 잘하는 사내"..............
나는 전혀 일 잘하는 사내의 축에 끼지 못한다.
집안일의 거의 대부분은 아내의 의사결정과 손에 의해 시작되고 마무리되기 일쑤다. 난 성이 손씨이지만 완전 똥손이다.
"똥손"의 사전적 의미가 "손재주나 승부 운이 없는 사람" 을 말한다고 하는데.....딱 영락없이 나다.
명절에 친척들과 고스톱을 쳐도 늘 개털이고 친구와 바둑을 두어도 대마가 잡히거나 덜컥수에 패를 거듭하고 있는 나
그래서 아내는 늘 굼뜨고 게으르며 손재주가 없는 내가 불만이다.
집안 진공청소기에 싸인 먼지통을 청소한답시고 밧데리와 전자부품이 들어있는 손잡이를 물에 씻다가
망가뜨려 AS를 보내던 일...
DIY 형태의 가구 조립에도 땀을 뻘뻘흘리며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시간만 죽이고 있는 나
그런 나를 바라볼 때 아내의 눈은 매의 눈처럼 차갑고 싸늘하다.
반면 아내의 손은 작지만 야무지고 매섭다.
빠르나 정확하고 감각적이고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손이다.
둘다 오른손잡이인데 하는일 마다 나는 항상 왼손이고 아내는 오른손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언젠가 딸아이의 "엄마는 공대생을 만났어야 했어" 라는 말에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20대에 이 무지랭이를 만나 지금껏 기한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무던히도 참고, 나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곱기만 하던 그녀의 손은 이제 너무 거칠어졌다.
내 아내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도 작가와 비슷한 답을 했을 것 같다.
늘 꽃과 정원가꾸기를 좋아하고 예쁜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어하는 아내는 나같은 똥손을 가진 사내와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 이 똥손~
그래......그럼 이제부터 집안 청소에서부터 설겆이, 쓰레기 분리수거 등 사소한 집안일 부터 잘 하는 사내로 다시 태어나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난 너튜브를 통해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 을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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